본문 바로가기
살며 느끼는 것들/뮤직 노트

가을에 불러보는 노래 3 -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꺼야

by 가제트21 2020. 9. 25.

산울림.

팝송에 비해 깔보고 있던 한국의 대중 음악에 대한 나의 생각을 뒤집기로 한판승을 거둔 세 명의 김씨 가수.

그래서 세계는 넓고 내가 아는 것은 좁쌀만큼도 안된다는 걸 산을 아름답게 울려서 알게 한 고마운 사람들. 

 

가을에 불러 보는 노래에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꺼야>를 굳이 집어 넣은 이유는 역시 산울림을 말하기 위함이다.

가을과 관련된 산울림의 노래가 있기는 있다.

'소슬 바람 가을에 그댈 만났지..'로 시작되는 <가을에 오시나요>가 그것이지만 난 산울림을 만난 그 해 겨울을 말하고 싶다.

1978년 초로 기억되는데, 내 동생이 사온 한 장의 음반,<산울림 1집>.

중학생 시절부터 즐겨 부르던 <트윈 폴리오>나 <양희은>류의 통기타 음악 또는 서투르고 여린 고등학생의 감성을 어루 만져주는듯한 감미로운 팝송에 빠져 있던 내 음악 세계를 뒤집으며 정수리에 찬물을 끼얹듯 영혼을 뽀개버린 한 장의 앨범.

그 속에 나란히 있던 노래 <아니 벌써>와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꺼야>는 기존의 음악과 전혀 다를뿐더러 새로운 것을 찾던 우리 형제에게는 개벽같은 노래였다.

이별,편지,사랑 등의 노래 제목에 익숙한 우리 세대에게 '늦은 여름'도 특이한 제목이지만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꺼야'라니? 정말 독특한 그들만의 언어와 음악이었다.

산울림의 음악 세계에 빠진 우리 형제는 7집까지 돈만 생기면 사 들였고(주로 동생이었음을 고백하며,이자리를 빌어 고마움을 전한다) 하루종일 그들의 음악을 들었다.

거의 모든 종류의 기타를 자유자재로 연주하는 동생은 애드립 및 코드를 따기 위해,난 그들의 음악 속에서 마음껏 허우적대기 위해......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 깊이 '산울림'에 빠져 있었던 건 그들 노래에 따뜻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산울림은 음악평론가들이 뽑는 전설 중의 하나로 꼽히며 나 또한 이의가 없지만 내가 다른 전설들과 다르게 부여하는 또 하나의 의미는 바로 그들 음악의 따뜻함이다.

 

그 어느 대중가수가 동요집을, 그것도 4장이나 발표했던가?

'산할아버지','개구쟁이','꼬마야','고등어' 등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그들의 동요는 가을에도 눈이 다반사로 오는 캘거리에 사는 우리들에게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노래들이다.

얼마전 우연히 EBS 인터넷 방송을 통해서 보게된 김창완-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그의 미소는 매력적이다-이 기타치고 세션맨들이 반주하며 부른 '아마 늦은...'을 들으며 지금도 그들에 대한 나의 충성(?)에는 변함이 없음을 느끼게 된다.

지금까지도 산울림이 발표한 거의 대부분의 노래 가사를 외우고 있다면 믿어지겠는가?


꼭 그렇진 않았지만/구름 위에 뜬 기분이었어

나무 사이 그녀 눈동자/신비한 빛을 발하고 있네
잎새 끝에 매달린 햇살/꿈 꾸는 듯 아련했어.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거야/우리들은 호숫가에 앉았지

나무처럼 싱그런 그 날은/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거야.

꼭 그렇진 않았지만/구름 위에 뜬 기분이었어

나무 사이 그녀 눈동자/신비한 빛을 발하고 있네
잎새 끝에 매달린 햇살/간지런 바람에 흩어져

뽀오얀 우윳빛 숲속은/꿈 꾸는 듯 아련했어.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거야/우리들은 호숫가에 앉았지

나무처럼 싱그런 그 날은/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거야.
 

늦은 여름마저도 꽤 지났지만 그렇다고 이 가을에 불러보지 말라는 법은 없다.

오히려 늦은 여름으로 연상되는 나른하고 몽환적인 느낌을 다시 한 번 맛보려면

이 노래를 들으며 와인 한 잔 곁들이는 것도 가을날의 한 정취가 아닐까?

중간에 기타 독주를 포함해서 길이가 6분이 넘으므로 처음 들으면 지루할 수도 있겠으나 지금 앨범을 통해서 듣기는 거의 불가능하므로 인터넷 방송을 통하여 한 번 들어보면 어떨까....   

꽤 오래 전에 세째인 김창익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떴지만 그들의 음악은 영원히 남아 있으리라.

 

 

 

내자 좋아하는 자우림 버젼도 들어보시라

이 리메이크는 산울림 트리뷰트 앨범(1999년)에 실린 곡(CD 1, Track #4) 

자우림의 실험 정신이 보인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