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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5

양파 한 겹씩 벗기면서 속살이 드러나는데 눈물이 지랄이다 보지 못할 바엔 먹었어야 했다 다 벗기고 보니 헛것이 보이는데 역시 눈물이 지랄이다 2020. 3. 28.
우린 어쩌면 우린 어쩌면 우린 어쩌면 바닷가를 걷고 있는지도 몰라 세상의 끝이라고 생각하던 곳 파도도 끝이라고 밀어부치는 경계선 그림자는 발끝에서 시작한다 모래를 만난 파도 몇 가락이 발가락을 치고 올라오다 맨 살에 데어 하얗게 구겨진다 발바닥이 뜨겁다 옆으로 걷는 게가 모서리에 위태롭게 서 있는 발가락에 걸린다 게는 세상의 끝을 만난 것처럼 납작 엎드리고 나는 일용할 양식을 만나 구원의 작은 조각을 얻을 때 신(神)의 자비처럼 게를 놔준다 우린 앞으로 간다면서 게처럼 옆으로 걷는걸까? 어쩌면 그러다가 신의 자비를 만나 바위 틈으로 숨어 들어가 다른 세상의 처음을 읽는 모래 위 소라처럼..... 2020. 3. 5.
겨울 독백 겨울 독백 올핸 눈이 참 많이 왔네요 달이 기울어서 그럴 겁니다 바다는 따뜻해졌나요 산들이 조금씩 높아졌겠죠 외로운가 보군요 모두가 그렇죠 올핸 눈이 많이 내렸군요 달이 찰 모양입니다. 2020. 3. 2.
번개 번개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수 많은 것들 중 몰려다니기 싫어 삐져 나온 것들과 따라가기 힘겨워 뒤쳐진 것들이 끝없는 하늘 길 어딘가에서 우연히 만나 껴안으면 땅에 번개가 친다네 땅에 깔려있는 수 많은 인간들 중 몰려 살기 싫어 홀로 쳐박힌 사람과 꽁무니 따라다니다 낙오된 사람이 깊은 산 속 어디쯤에서 운명처럼 만나 포옹하면 하늘에 번개가 친다네 당신은 그렇게 쏟아진 수 많은 번개 중에 내 가슴에 박힌 단 하나의 번개 2020. 1. 17.
새해, 들판을 걷는다 새해, 들판을 걷는다 들꽃은 혼자 피지 않는다 들풀은 홀로 살지 않는다 많은 이름없는 잡것들과 그 밑에 파묻힌 거친 발자국들, 속상한 관절통과 바로 옆의 말랑말랑한 옹알이들, 찢긴 해고 통지서와 토끼들이 점점이 뿌리고 간 메마른 검정콩들이 세모의 겨울 들판에 섞여있다. 새 달력의 첫 장이 솟아 오른 첫 시각, 인간들은 불꽃을 하늘로 쏘며 소망을 값없이 재잘대고 차들은 경적을 어둠 속에 쏟아놓고 한 해를 더 묵힌 축배가 찰랑거릴 때 캄캄한 들판, 까칠한 예쁜 풀들과 검푸른 멍 자국들과 하얗게 퍼진 치료제, 꺼억 거리는 울음과 토닥거리는 바람이 천천히 서로를 돌아본다. 불꽃보다 더 환해진다. 희망들이 하늘로 올라 번쩍거리며 멸(滅)할 때 들판은 지나간 것들을 다 땅에 묻는다. 묻혀서 묵힌 것들이 다시 일어서.. 2020. 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