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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느끼는 것들/자작시17

강(江) 1 강(江) 1 물러서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돌아가는 법은 도무지 모른다 흘러갈 뿐이다 강 같은 평화니 강 같은 의젓함이니 얘기하지만 똥, 오줌, 쓰레기 마셔보고 오라 참을만하면 같이 가도 좋다 바다를 만날 꿈을 말하지만 강도 바다도 보이는 건 하찮다 그저 흐를 뿐 그렇게 흘러가다 만나면 없어질 뿐이다 강처럼 살지 말고 네가 강이 돼라 강 같은 평화보다 너의 평화가 좋다 흘러간다는 건 멈추지 않는다는 것 멈추면 똥 된다 썩는다. (사이) 썩기 전에 누군가 마시고 강으로 가지 말고 하늘로 올라갔으면 해. Pixabay로부터 입수된 sabi hyang님의 이미지입니다. 2023. 7. 30.
(시)종로 기러기, 캐나다 기러기 종로 기러기, 캐나다 기러기 젊은 기러기들은 충돌하는 법이 없다 마법사들의 비행처럼 흔적도 없다 몰려오는 것들과 사라지는 것들은 층을 이루어 퇴적되지만 역사화되지 않는다 대낮엔 최루탄, 돌멩이와 쇠주병들이 공중에서 맞짱뜨며 짖어댔지만 저녁 무렵 종로서적 앞은 바글바글해도 멍멍거리진 않았다 만남과 헤어짐만 퍼덕거리다 가라앉을 뿐. P가 부르면 J는 손을 흔들어 부재를 부정하고 K 또는 다른 알파벳 중 하나가 자리를 채우면서 기러기들의 비행법을 이어간다 Y는 Y'가 된 L과 비행하기 위해 서둘러 나왔다가 책을 한 권 사고 L을 부르고 부재는 부정당하고 쌍을 이루어 까만 종로 바닥을 하얗게 비행하다 내일의 수류탄(?)이 될 지도 모를 쇠주를 까고 여기저기 헤어짐이 먹물처럼 퍼진 종로 바닥에 '사뢍한돠'를 토한.. 2023. 7. 26.
하얀 오후 하얀 오후 멍하니 구름을 본다 빠르게 사라지는 깊은 침묵들 다시 뭉치지만 하얗게 토한다 바람, 소리 멈추고 토한 자국 지운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옹이들이 옅은 자국 위로 보인다. 갈 수 없는 나라 푸른 안개 황홀하게 없어진 것들 초라하게 남아 있는 나 포개졌다 흘러간 구름처럼 사라지는 건 어렵지 않아 사라지는 걸 보는 게 어렵지 구름이 다시 뭉친 건 옹이를 지우려던 흔적들이 구름처럼 얼룩진 내가 보이니까 빗방울이 똑 똑 링거처럼 몸 안에 들어오고 있는 하얀 오후. (초본 2019년 5월 15일) 2022. 11. 16.
산이 쓴 시 시를 쓰려고 산에 오르다 산이 쓴 시를 만났다. '산다는 건 버티는 거야' 눈이 도로를 휘돌아 달린다. 휘청거리는 차 흔들리는 마음 '뿌리를 더 내려' 눈빨이 자동차를 휘감아 흔든다. 발이 무겁거나 너무 가벼워서 허우적대거나 산이 쓴 시를 바람처럼 맞고 왔다. 눈사람처럼 덮고 왔다. 산 속에 심고 왔다. ============================== *산이 시가 되어버린 1월 1일 1번 하이웨이는 온통 눈이 흘러 다니고 조금 더 깊숙히 뿌리 내린 나무들...... 2022년은 하루하루가 시가 되면 좋겠다는 짧은 시 하나. 2022. 11. 10.
점자(點字) 점자(點字) 이제 점자를 배워야 할까 봐 오마니 담담하게 말씀하시네 낼모레면 떠날 아들 김 나는 밥을 집어 넣다가 아무 말 못하네 점점이 내리다 뭉쳐버린 눈 뭉치들이 꾸역꾸역 기어가고 밥알들도 뭉쳐서 줄지었다 꼬부라졌다 점자를 만들려는지 도무지 내려갈 생각이 없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하지만 그 보이는 걸 손에 의지하면 보고 싶은 걸 볼 수 있을까 안 보이는 것들이 보이려나 아들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는 오마니 눈이 점점 흐려지고 밥알들은 ‘ㅇ’, ‘ㅓ’ 그리고 ㅁ’을 만들었네 보이는 것들은 안 보이는 것들과 안 보이는것들은 그들끼리 엄마와 아들은 단둘이 그렇게 살다가 눈이 다시 오고 눈끼리 뭉쳐서 세상이 환해지면 안 보여도 볼 수 있을 그 날이. 밥알들이 ‘ㅁ’ 그리고 ‘ㅏ’를 만들었네 아들 얼굴을.. 2022. 11. 2.
겨울의 뒷모습 겨울의 뒷모습 뒷모습에 새겨진 그림자는 걸을 때마다 뒤척인다 등이 휘어지면 솔기가 삐져나오고 어깨가 내려오면 겨드랑이 비어 가고 무릎이 꺾이면 주름이 늘어간다 허전한 뒤꿈치가 보여주는 허물어진 과거의 영광 동장군의 위용은 어데 가고 흰머리 할배만 초라하게 흔들리는가 굽은 등 뒤에선 녹는 소리 힘들게 돌아보니 흩어진 채 검게 그을린 잔설들! 눈길이 주저앉는다. 따뜻해서 오히려 낯선 풍경! 떠밀리듯 다시 돌아서서 간다. 가도 아주 가진 않고 반 걸음만 그 반에 반 걸음만 햇빛 속으로…. 주:이 시는 수필 의 반대편을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서 본 그림입니다. (초본:2019/03/19) 2022. 10. 30.
믿는 도끼 믿는 도끼 Ⅰ 날(日)들을 새어 날 하나를 세운다 낯이 수척할수록 날은 예리해지고 자루를 잡은 손에 믿음이 스며든다. 숲 속의 나무들 가운데서 곧은 나무만 도끼의 은총이 허락되니 나무 허리에 번쩍, 안수한다. Ⅱ 번쩍임에 눈이 팔리면 발등이 찍힌다. 나무 대신 사람이 쓰러지고 많은 날(日)들과 믿었던 날을 바다에 버린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서듯(因地而倒 因地而起)[1] 도끼에 찍힌 자 다시 도끼를 만든다. 다른 날(日)들이 새로운 날을 세운다. Ⅲ 찍어도 다시 자라는 나무들처럼 찍혀도 다시 세우는 민초들의 서러운 믿음처럼 믿는다는 건 찍혀도 다시 자루를 잡는 것. 찍힘과 찍음이 도끼 자루에 깊숙이 파여 있다. Ⅳ 수 없이 찍힌 배와 찍은 바다 사이에 파도에 절인 선원들이 있다. 수 없이 찍.. 2022. 10. 30.
빛이 묻는 안부 빛이 묻는 안부 어두운 구멍. 숨어 있기 알맞은 그 곳엔 떠나가지 못한 것들과 떠날 수 없는 것들 때론 다시 돌아온 것들이 뒤엉켜…… 치고받다가 밀려난 놈이거나 고양이 목에 방울 달려고 떠밀린 특공대거나 구멍 밖으로 기어 나오는 스멀스멀한 쥐똥같은 냄새들 납작 엎드린 등 위로 굽은 형광등 불빛이 묻는 따뜻한 안부. 날지는 못해도 기지는 말아라. (원 :2019/10/14 수정 :2022/10/29) 2022. 10. 30.
공존 (디카시) 공존 여름엔 잎을 입고 겨울엔 잎을 벗는 너 겨울엔 옷을 입고 여름엔 옷을 벗는 나 널 찍는 나와 날 삼키는 너 서로에게 침투하거나 교대하면서 공존하기 2021. 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