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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느끼는 것들/수필,꽁트,기타9

시작은 연애편지 대필 시작은 연애편지 대필 “철수야 놀자” 친구들이 제 이름을 부르며 놀자고 합니다. 전 대꾸조차 안 합니다. 그런데 또 “철수야 놀자….” 귀에 익은, 아니 언제나 듣고 싶었던 사랑스러운 목소리가 절 부릅니다. 국민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국민대표 이름 ‘철수’는, 그러나 딱 한 사람 ‘영숙’씨가 불러야 달려갈 수 있습니다. 제 이름 ‘철수’는 영숙 씨가 불러야 온전히 제 것이 됩니다. 어쩌고 저쩌고 ……………………………” 이 수경(수경은 전투경찰 대원의 최상 계급으로 육군의 병장에 해당)은 첫 문장을 읽으며 대단히 흡족해했다. “짜식, 제법이란 말이야.” “야, 근데 너무 내 것 같지 않아서 말이지… 좀 걱정되네.” “아! 참, 이 수경님! 여자들은 일단 좋은 문장이 가슴에 들어오면 그걸 누가 썼는.. 2023. 7. 28.
봄보로봄봄 봄 봄 봄보로 봄봄봄 봄 매년 느끼는 거지만 캘거리에 상륙하는 봄 군대는 당나라 군대를 닮은 듯이 어수선하게 왔다가 흐느적대며 떠난다. 내가 지금까지 지켜본 그 상륙 작전의 전체적인 진행은 대체로 이렇다. 상륙 본진은 보통 3월 중순 혹은 4월 초에 작전을 시작한다. 그러나 이 본진이 오기 전인 1월부터 3월까지 특수 부대인 시눅팀이 서너 차례, 많으면 대여섯 차례 침투하는데 이 팀이 특공대인지 훈련병으로 구성된 것인지 헷갈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당나라 군대답게 미리 예고를 하고 나타나는 것도 그렇고, 로키 동장군이 지휘하는 막강한 겨울 군대를 우습게 보고는 무작정 진격을 하다가 맥없이 전멸당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가끔 훈련이 잘된 특공대가 급습해서 며칠을 버틴 경우가 있긴 하지만 영하(零下) 대대가 한니.. 2022. 10. 30.
야행성은 지금도 진행 중 야행성은 지금도 진행 중 늘 야행성이었다. 중, 고등학교 때도 그랬고 대학생 때는 더 말할 필요도 없었고 지금도 여전하다. 아버지는 늘 일찍 주무셨고 일찍 일어나셨기 때문에 부계쪽 유전은 아니다. 그렇다고 다리 밑에서 줏어온 아이도 아닌 확실한 이유는 엄마도 나와 같은 야행성이었다. 그 야행의 동반자는 청춘 시대에는 라디오였다가 다시 TV(주로 바둑 그리고 영화), 그리고 최근에는 인터넷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스마튼 폰으로 한국 라디오 심야 방송을 여기 시간으로 아침에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심야 방송이다 보니 대체로 음악이 반, 사연과 그 사연에 대한 진행자의 멘트가 반이다. 내 젊은 날,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 쇼” 혹은 이문세의 “별 밤”을 듣는 기분이다. 사연은 예나 지금이나 사랑 고민이 대부분.. 2022. 10. 28.
퀴즈광 퀴즈 광 어릴 적 내 놀이기구는 구슬,딱지,팽이,자치기,나무 칼 싸움 등 그 시절 흔히 볼 수 있던 것들 이었다.물론 그런 놀이 기구 없이도 땅 따먹기, 오징어, 문 앞 연탄재 발로 차기, 남의 집 초인종 누르고 도망가기, 엿 바꿔 먹으러 고철 찾아 하루 종일 돌아 다니기 등을 통해 야외 활동(?)을 어두컴컴할 때까지 한 것도 물론이다. 풍족했던 어린 시절에는, 저녁이면 온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 마루에 모여 TV 드라마를 시청하고, 난 철딱서니 없게도 홀로 안방에 길게 모로 누워 편안하게 TV 시청을 했었다. 집이 쫄딱 망하고 나선 TV도 없어지고 그런 재미도 사라졌다. 그 즈음, 그러니까 초등학교 4학년 이후부터는 집에 들어 와서 숙제를 후다닥 해치우고 야외 활동을하다가, 해자 져서 집에 들어오고 나.. 2022. 10. 27.
(꽁트)빈대 빈대 “우리는 음지에서 살고 양지를 흡입한다” [1] 아침에 부랴부랴 나가다 보면 늘 마주치는 현관 위에 걸려 있는 가훈 액자. 오늘도 모친은 여수와 더불어 그 액자를 슬쩍 보더니 천 원짜리 한 장을 준다. 점심, 저녁, 버스, 담배 값으로. 부친이 30년 직장 생활 동안 머릿속에 주입된 원훈을 자신에게 알맞게 변조한 후에 집안 식구 모두에게 따라 하도록 만든 가훈이다. 여수 본인도 그 가훈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체질에 맞는지 부친보다 더 양지를 흡입했다. 천 원짜리 한 장은 고이 접어 나빌레라,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지만 아마도 저녁이 되어서야 비로소 꼬깃꼬깃해진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점심을 위해서 천원이 나올 필요는 없었다. 단지 학교 식당 배식기 옆의 수저통에 놓여있는 쇠 젓가락 한 세트면.. 2022. 10. 26.
봄을 갈아 마시는 방법 봄을 갈아 마시는 방법 동작 그만!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동작 그것밖에 못하나! 좌로 굴러, 우로 굴러, 일어서. 대가리 박아! 조교는 “박아”에서 “아”를 유난히 강조했다. 거의 악을 쓰듯 내뱉는 조교의 벌어진 아가리를 보고 싶다는 생각은 아주 잠깐. 대가리- 빡빡머리와 철모가 일체가 된 까맣게 그을린 목 위의 물체-를 땅에 박으니 땀이 눈으로 들어오고 푸른 하늘이 가랑이 사이에서 깜박거렸다.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를 부르고 싶은 나의 아가리는 조교의 명령대로 ‘멋있는 사나이’를 부르느라 모가지 밑에서 악을 쓰고 있었다. 악을 써야 짧게 박고 더 악을 써야 서 있을 수 있는 세월이었다. 오월의 햇살은 ‘ㅅ’ 자로 벌어진 가랑이 사이로 주룩주룩 들어오고 있었고 땀은 군복으로 스며들면서 .. 2020. 5. 30.
돼지에게 개가 돼지에게 개가. 가끔은 내 속에 잠자던 추잡한 것들이 급박한 상황을 만나면 저지할 틈도 없이 쏟아져 나올 때가 있다. 이웃 사랑, 인간에 대한 배려, 왼 뺨을 때리면 오른뺨을 내밀라 등 주옥같은 말씀들이 들어오면서 똥 냄새 가득했던 마음이 향긋한 냄새를 풍기며 발효되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갑자기 곰팡이가 급속히 번지며 마음을 순식간에 갉아먹더니 벼락 맞은 것처럼 입이 좍 갈라지면서 터져 나온 한 마디. “씨X 개XX” 잠자고 있던 한국말로 된 욕이었다. 왜 한국말이 튀어 나왔는지, 사건 현장을 녹화 필름으로 다시 보자 밤새 내린 눈으로 빠득거리는 월마트 주차장에 대충 주차하고(선이 안 보여서 다들 대충 주차한 상태였다), 장을 보고 나오는 길이었다. 보통은 앞면 주차가 보통인데 그 빠득거.. 2020. 2. 28.
불합격, 그 후 불합격, 그 후 “전투경찰이었다고 써있는데, 그러면 모든 상황은 다 똑같다고 치고, 다시 대학생으로 돌아간다면 그래도 데모를 하겠는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대답을 해야 했다. 맑았던 머릿속이 하얗게 변색되도록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면접관의 눈초리는 독수리처럼 나를 잡아먹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더불어 입술은 독수리 앞에 놓인 시체처럼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3년간 준비했던 5급 공무원 시험을 어머니의 장기 입원으로 깨끗하게 정리하고 나서, 당시 내 나이로 칠 수 있는 유일한 대기업인 H그룹 Y 증권의 신입사원 공채를 봤다. 다행히 그동안 죽기살기로 공부한 때문이었는지 필기시험은 무사히 넘겼고 면접에서도 별 탈 없이 질문과 대답을 잘 이어갔다. 그러나 중앙에 앉아 묵묵히 서류만 검토하.. 2020. 2. 24.
임플란트 여행 임플란트 여행! 연식이 오래되고 구실도 못 하고 모양도 형편없는 치아를 빼고 본인의 구강 구조에 맞춰 치아 비스므리 한 걸로 갈아엎어버리는 일을 위해 모국 땅을 밟는 것. (출처: 가제트 사전) 이민 올 때만 해도 멀쩡했던 치아는 갈수록 흉측하게 변했다. 이유는 이것저것 댈 수 있지만 그렇다고 바로 그거라고 똑 부러지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없어서 편리하게 대충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러자 임플란트 수술을 받은 이웃들은 자기들도 그랬다고 하면서 한국이 싸고 잘한다고 떠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치아 동서를 만들려는 유혹이었고, 제2차 세계 대전에 버금가는 전투 무용담이었으며, 또 나의 여행에 대한 예언이었다. 한국행 비행기 표를 끊으니 성취된 예언에 대해 예비 치아동서들은 축배를 들며 위로했다. 뽑기 .. 2020. 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