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살며 느끼는 것들/수필,꽁트,기타

불합격, 그 후

by 가제트21 2020. 2. 24.

불합격, 그 후

                                                     

 

전투경찰이었다고 써있는, 그러면 모든 상황은  똑같다고 치고, 다시 대학생으로 돌아간다면 그래도 데모를 하겠는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대답을 해야 했다. 맑았던 머릿속이 하얗게 변색되도록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면접관의 눈초리는 독수리처럼 나를 잡아먹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더불어 입술은 독수리 앞에 놓인 시체처럼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3년간 준비했던 5급 공무원 시험을 어머니의 장기 입원으로 깨끗하게 정리하고 나서, 당시  나이로   있는 유일한 대기업인 H그룹 Y 증권의 신입사원 공채를 봤다. 다행히 그동안 죽기살기로 공부한 때문이었는지 필기시험은 무사히 넘겼고 면접에서도   없이 질문과 대답을  이어갔다. 그러나 중앙에 앉아 묵묵히 서류만 검토하던 높아 보이는 분의 마지막 칼이 가슴을 정조준하며 찔러온 것이다.

 

칼의 의도는 충분히 안다. 그리고 살짝만 비키면 가벼운 찰과상으로 끝날 일이었다.

심호흡을 하면서 잠시 뜸을 들였다.

그러나 도저히  하겠다는 답이  나왔다.  답을  수가 없었다.

또다시 부조리를 목격한다면 형태는 달라도 그런 부조리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젊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체로 그런 식으로 대답한  같았다. 나름 내 주장을 최소한으로 줄여서 얘기한 것이며 그 정도는 상식에 부합하는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최종 합격자 명단에서  이름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아쉬웠지만 후회는 없었다.

 

면접을 본다는 건 을의 입장이기 떄문에 '갑질'은 어느 정도는 받아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을'이라도 비굴해지지는 말자가 내 신조였고 또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다.

불의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회사라면 합격해서 다닌다 해도 금방 나올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내 성격상)

이런 생각이 후회되지 않는 나름의 이유였다.

(나중에 합격한 친구로부터 들은 얘기, 면접에 들어 온 이상 95%는 붙었다고... 재수없는 ㅅㄲ...)

 

 다른 새로운 도전을 하자.’ 결국,  길이 컴퓨터 프로그램을 배우는 것이었고(거의 10살 차이나는 애들과 같이 배웠다. 쪽팔림은 성적으로 극복했다.) 그리고 취직을 했고 5년 후에 프로그래머 자격으로 이민을 왔으니 됐다.

 

면접을 마치고 나오면서 떠오른 장면은 7 전.

안동에서 전투경찰 훈련을 끝내고 김포공항 경비대에 배치를 받은 후 아직 본부에서 지내고 있었을 때였다.

우리 동기  명은 군기가 바짝 들어 부동자세로 본부 소대의 침상에 앉아 있었는데, 느닷없이 키가 180 넘는 순경 하나가 들어오더니 대뜸 너희들 모두 대학생들이었다며?” 하면서  대씩 후려갈기기 시작한 것이다. 맞으면서 관등성명을 대고 오뚝이처럼 일어선 우리에게  순경은 이렇게 악을 쓰며 물었다.

 

대학교  데모한  나와.” 

 

서로 눈치만 보고 있을  동기생  이병이 , 이경 ….”하면서 한 발을 내딛자마자  패듯이 패기 시작했다. 가슴엔 거대한 발자국이 찍혔고 얼굴엔 솥뚜껑 같은 손바닥이 덮쳤다. 스무  살을 사는 동안 눈앞에서 사람이 사람을 개처럼 패는  목격한 것은 처음이었다.

다리가 너무 후들거려서  있을 수도 없었지만   감고  악물고 버텼다. 때리다 지친  순경은 가쁜 숨을 몰아쉬더니 다시 한번 물었다. “너희 나머지 개새끼들은 데모 했어, 안했어?”

 

우리 셋은 목이 터지라 합창을 했다. “ 했습니다.”

좋아, 내가  이러는  알아? 80년도에 순경 시작하자마자 데모하는 너희 대학생 놈들 때문에 내가 얼마나 피똥쌌는 알아? 니들은 웬수야 웬수.” 그렇게 일장 연설을  후에  흘리는 동기를 내팽겨둔  씩씩거리며 나갔다.

입술의 피를 닦으며  동기는 실없이 웃었다. 그를 일으켜 세우는  정말 쪽 팔렸고, 가슴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그래, 개처럼 팰 때 그러리라 짐작했지. 우리가 너희 순경이 미워서 그랬겠냐? 그렇다고 아무 힘도 없는, 이제  이병 작대기 하나   동기를 저렇게 만드냐? . 나도 차라리 아까 데모했다고 하고 흠씬 두들겨 맞았으면 이렇게 초라하고  팔리지 않았을 텐데…’

  다시는 이런 쪽팔림은 당하지 않으리라.’

 

결국, 면접관의 칼이 정통으로 찔러 왔지만 입대 당시의 다짐이 떠올랐고, 흠씬 두들겨 맞았지만(떨어졌지만) 개운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사법시험 최종 면접에서도 비슷한 질문을 받았지만,  당시 행동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답을 했다고 한다. 그는 붙었고  떨어졌다.

물론 나와  대통령은 시련의 기간이나 격이 다르다.

 

조카가 항공사 면접을 보고 왔는데 아무런 연락이 없는 것을 보니 떨어진 것 같다고 한다.

'또 다른 길은 많아' 조카의 풀 죽은 어깨를 두드리며 문 대통령의 일화와 내 오래 전 기억이 떠올라 끄적거려  것이다.

 

Pixabay 로부터 입수된 Clker-Free-Vector-Images님의 이미지.

(이 글은 오래 전에 써 둔 것인데 조카 덕분에(?) 조금 수정,보완해서 올림.)

'살며 느끼는 것들 > 수필,꽁트,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퀴즈광  (0) 2022.10.27
(꽁트)빈대  (3) 2022.10.26
봄을 갈아 마시는 방법  (2) 2020.05.30
돼지에게 개가  (6) 2020.02.28
임플란트 여행  (0) 2020.01.2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