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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느끼는 것들/자작시

(시)종로 기러기, 캐나다 기러기

by 가제트21 2023. 7. 26.

종로 기러기, 캐나다 기러기

 

젊은 기러기들은 충돌하는 법이 없다
마법사들의 비행처럼 흔적도 없다
몰려오는 것들과 사라지는 것들은 층을 이루어 퇴적되지만 역사화되지 않는다


대낮엔 최루탄, 돌멩이와 쇠주병들이 공중에서 맞짱뜨며 짖어댔지만

저녁 무렵 종로서적 앞은 바글바글해도 멍멍거리진 않았다

만남과 헤어짐만 퍼덕거리다 가라앉을 뿐.


P가 부르면 J는 손을 흔들어 부재를 부정하고
K 또는 다른 알파벳 중 하나가 자리를 채우면서 기러기들의 비행법을 이어간다
Y는 Y'가 된 L과 비행하기 위해 서둘러 나왔다가

책을 한 권 사고 

L을 부르고

부재는 부정당하고 

쌍을 이루어 까만 종로 바닥을 하얗게 비행하다 

내일의 수류탄(?)이 될 지도 모를 쇠주를 까고

여기저기 헤어짐이 먹물처럼 퍼진 종로 바닥에 '사뢍한돠'를 토한다


백색 기러기*들과 전투를 벌이고 돌아온 오후

먼지가 폴폴나는 책장 속 책을 만지작 거리다 무념무상으로 꺼낸 책 

맨 앞장에 적힌 "1985년 종로서적"을 발견한 나이 든 황색 기러기는
Y'가 된 L을 부른다

마눌! 수류탄이나 만들자.


Pixabay로부터 입수된 min woo park님의 이미지 입니다.(종로 밤거리)

 

*백색 기러기:캐나다에서 사는 주류 백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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