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판을 걷는다
들꽃은 혼자 피지 않는다
들풀은 홀로 살지 않는다
많은 이름없는 잡것들과 그 밑에 파묻힌 거친 발자국들,
속상한 관절통과 바로 옆의 말랑말랑한 옹알이들,
찢긴 해고 통지서와 토끼들이 점점이 뿌리고 간 메마른 검정콩들이
세모의 겨울 들판에 섞여있다.
새 달력의 첫 장이 솟아 오른 첫 시각,
인간들은 불꽃을 하늘로 쏘며 소망을 값없이 재잘대고
차들은 경적을 어둠 속에 쏟아놓고
한 해를 더 묵힌 축배가 찰랑거릴 때
캄캄한 들판,
까칠한 예쁜 풀들과
검푸른 멍 자국들과
하얗게 퍼진 치료제,
꺼억 거리는 울음과
토닥거리는 바람이
천천히 서로를 돌아본다.
불꽃보다 더 환해진다.
희망들이 하늘로 올라 번쩍거리며 멸(滅)할 때
들판은 지나간 것들을 다 땅에 묻는다.
묻혀서 묵힌 것들이 다시 일어서면
새로운 한 해가 비로소 희망적이 된다.
새해는 소망을 하늘로 올려서 희망적인 것이 아니라
묵혀서 사라지는 한숨들과
어루만지다 스며드는 바람,
눈물을 닦아주는 두 손에서 희망적이 된다.
눈 덮인 들판을 걷는 새해는 언제나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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