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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느끼는 것들/뮤직 노트

가제트가 가을에 불러 보는 노래 1

by 가제트21 2020. 9. 23.

가을에 불러보는 노래 연작은 가제트가 속한 문인협회에 몇 년전 올린 글인데

티스토리 시작하고 다시 가을이 되어 여기로 옮겨본다.

티스토리가 가제트 글들의 창고가 될 것이기 때문에...

옮기면서 좀 수정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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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뭔가 좀 어색한 계절이다.

여름의 길고 뜨거운 햇빛에 들떠있다가 발 밑에서 펄럭이는 노란 나뭇잎을 보고 '어! 가을이네'라고 느낄 때면 가슴은 이미 찬 공기에 쪼그라져 있고, '이 가을을 어떻게 지내나' 보다 ' 올 겨울은 어떻게 보내나'라는 생각이 머리 속에서 싸리눈처럼 흩날리기 시작한다.

캘거리처럼 기나긴 겨울과 짧은 가을을 가지고 있는 북쪽 동네에 살다 보면 찬 바람이 살짝만 불어도 당장 여름 옷들을 접어 장롱 속에 넣어 놓고 옷장 안에 처벅아 놓았던 겨울 옷을 꺼내면서 옷걸이의 후미진 구석에 어색하게 걸려있는 춘추용 외투를 슬쩍 한 번 만져보고는 아예 맨 구석으로 밀어 넣는다.

'내 년에 다시 보자'라는 확실치도 않은 어색어색한 격려 한 방 먹이면서....

 

낙엽들이 둘둘 말려서 이리 저리 쓸려 다니는 모습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처량해 보이고,

Mall 주차장 한 가운데를 굴러 다니는 전단지 몇 장은 정말 어색하게 어울려 있는데.....

때 이른 월동 준비는 게으른 나의 성품이 허용치 않고, 타고난 베짱이 기질이 괜히 오래동안 구석에 쳐박혀 있는 기타를 만지작 거리게 한다.

가을 바람에 보조 맞추듯 께작거리며 흘러 내리는 가느다란 콧물을 슬쩍 닦은 지저분한 손으로....

 

가을에 불러 보고 싶은 노래...

뭐가 있을까?

퍼득 떠오르는게 윤도현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이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노오란 은행잎들이 바람에 날려가고

지나는 사람들 같이 저 멀리 가는걸 보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 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있는 나무들같이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 저물도록 몰랐네..

 

작사,작곡가인 김현성은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 실려 많은 사랑을 받은 노래 <이등병의 편지>도 만든 가수이자 시인이다.

그는 노래가 '3분짜리 영화'라는 걸 주장하는 작사가인만큼 이미지를 압축하는 표현력이 뛰어나다.

윤도현은 그런 김현성의 작사에 가장 잘 맞는 가창력과 표정으로 가을 우체국을 부른다.

가버린 사랑을 포함해서 아름다운 것들은 모두 가버리지만, 우체국 앞에까지 와서 날 저물도록 기다리면서 홀로 설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보는, 사랑을 기다리는 한 남자.

그 남자에 가장 잘 어울리는 윤도현!

 

가끔 노래방 기계 반주를 통해 이 노래를 부를 때 항상 고음에서(소나기와 눈보라-역시 모진 시련이다) 켁켁거려서 따라 부르기 어려운 노래 중의 하나이지만, 어쩌랴 가을에 이 노래가 제일 먼저 생각나는 나 또한 날 저물도록 홀로 설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왕년의 우체국 남자(?)였던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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