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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느끼는 것들98

점자(點字) 점자(點字) 이제 점자를 배워야 할까 봐 오마니 담담하게 말씀하시네 낼모레면 떠날 아들 김 나는 밥을 집어 넣다가 아무 말 못하네 점점이 내리다 뭉쳐버린 눈 뭉치들이 꾸역꾸역 기어가고 밥알들도 뭉쳐서 줄지었다 꼬부라졌다 점자를 만들려는지 도무지 내려갈 생각이 없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하지만 그 보이는 걸 손에 의지하면 보고 싶은 걸 볼 수 있을까 안 보이는 것들이 보이려나 아들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는 오마니 눈이 점점 흐려지고 밥알들은 ‘ㅇ’, ‘ㅓ’ 그리고 ㅁ’을 만들었네 보이는 것들은 안 보이는 것들과 안 보이는것들은 그들끼리 엄마와 아들은 단둘이 그렇게 살다가 눈이 다시 오고 눈끼리 뭉쳐서 세상이 환해지면 안 보여도 볼 수 있을 그 날이. 밥알들이 ‘ㅁ’ 그리고 ‘ㅏ’를 만들었네 아들 얼굴을.. 2022. 11. 2.
봄보로봄봄 봄 봄 봄보로 봄봄봄 봄 매년 느끼는 거지만 캘거리에 상륙하는 봄 군대는 당나라 군대를 닮은 듯이 어수선하게 왔다가 흐느적대며 떠난다. 내가 지금까지 지켜본 그 상륙 작전의 전체적인 진행은 대체로 이렇다. 상륙 본진은 보통 3월 중순 혹은 4월 초에 작전을 시작한다. 그러나 이 본진이 오기 전인 1월부터 3월까지 특수 부대인 시눅팀이 서너 차례, 많으면 대여섯 차례 침투하는데 이 팀이 특공대인지 훈련병으로 구성된 것인지 헷갈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당나라 군대답게 미리 예고를 하고 나타나는 것도 그렇고, 로키 동장군이 지휘하는 막강한 겨울 군대를 우습게 보고는 무작정 진격을 하다가 맥없이 전멸당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가끔 훈련이 잘된 특공대가 급습해서 며칠을 버틴 경우가 있긴 하지만 영하(零下) 대대가 한니.. 2022. 10. 30.
겨울의 뒷모습 겨울의 뒷모습 뒷모습에 새겨진 그림자는 걸을 때마다 뒤척인다 등이 휘어지면 솔기가 삐져나오고 어깨가 내려오면 겨드랑이 비어 가고 무릎이 꺾이면 주름이 늘어간다 허전한 뒤꿈치가 보여주는 허물어진 과거의 영광 동장군의 위용은 어데 가고 흰머리 할배만 초라하게 흔들리는가 굽은 등 뒤에선 녹는 소리 힘들게 돌아보니 흩어진 채 검게 그을린 잔설들! 눈길이 주저앉는다. 따뜻해서 오히려 낯선 풍경! 떠밀리듯 다시 돌아서서 간다. 가도 아주 가진 않고 반 걸음만 그 반에 반 걸음만 햇빛 속으로…. 주:이 시는 수필 의 반대편을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서 본 그림입니다. (초본:2019/03/19) 2022. 10. 30.
믿는 도끼 믿는 도끼 Ⅰ 날(日)들을 새어 날 하나를 세운다 낯이 수척할수록 날은 예리해지고 자루를 잡은 손에 믿음이 스며든다. 숲 속의 나무들 가운데서 곧은 나무만 도끼의 은총이 허락되니 나무 허리에 번쩍, 안수한다. Ⅱ 번쩍임에 눈이 팔리면 발등이 찍힌다. 나무 대신 사람이 쓰러지고 많은 날(日)들과 믿었던 날을 바다에 버린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서듯(因地而倒 因地而起)[1] 도끼에 찍힌 자 다시 도끼를 만든다. 다른 날(日)들이 새로운 날을 세운다. Ⅲ 찍어도 다시 자라는 나무들처럼 찍혀도 다시 세우는 민초들의 서러운 믿음처럼 믿는다는 건 찍혀도 다시 자루를 잡는 것. 찍힘과 찍음이 도끼 자루에 깊숙이 파여 있다. Ⅳ 수 없이 찍힌 배와 찍은 바다 사이에 파도에 절인 선원들이 있다. 수 없이 찍.. 2022. 10. 30.
빛이 묻는 안부 빛이 묻는 안부 어두운 구멍. 숨어 있기 알맞은 그 곳엔 떠나가지 못한 것들과 떠날 수 없는 것들 때론 다시 돌아온 것들이 뒤엉켜…… 치고받다가 밀려난 놈이거나 고양이 목에 방울 달려고 떠밀린 특공대거나 구멍 밖으로 기어 나오는 스멀스멀한 쥐똥같은 냄새들 납작 엎드린 등 위로 굽은 형광등 불빛이 묻는 따뜻한 안부. 날지는 못해도 기지는 말아라. (원 :2019/10/14 수정 :2022/10/29) 2022. 10. 30.
야행성은 지금도 진행 중 야행성은 지금도 진행 중 늘 야행성이었다. 중, 고등학교 때도 그랬고 대학생 때는 더 말할 필요도 없었고 지금도 여전하다. 아버지는 늘 일찍 주무셨고 일찍 일어나셨기 때문에 부계쪽 유전은 아니다. 그렇다고 다리 밑에서 줏어온 아이도 아닌 확실한 이유는 엄마도 나와 같은 야행성이었다. 그 야행의 동반자는 청춘 시대에는 라디오였다가 다시 TV(주로 바둑 그리고 영화), 그리고 최근에는 인터넷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스마튼 폰으로 한국 라디오 심야 방송을 여기 시간으로 아침에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심야 방송이다 보니 대체로 음악이 반, 사연과 그 사연에 대한 진행자의 멘트가 반이다. 내 젊은 날,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 쇼” 혹은 이문세의 “별 밤”을 듣는 기분이다. 사연은 예나 지금이나 사랑 고민이 대부분.. 2022. 10. 28.
퀴즈광 퀴즈 광 어릴 적 내 놀이기구는 구슬,딱지,팽이,자치기,나무 칼 싸움 등 그 시절 흔히 볼 수 있던 것들 이었다.물론 그런 놀이 기구 없이도 땅 따먹기, 오징어, 문 앞 연탄재 발로 차기, 남의 집 초인종 누르고 도망가기, 엿 바꿔 먹으러 고철 찾아 하루 종일 돌아 다니기 등을 통해 야외 활동(?)을 어두컴컴할 때까지 한 것도 물론이다. 풍족했던 어린 시절에는, 저녁이면 온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 마루에 모여 TV 드라마를 시청하고, 난 철딱서니 없게도 홀로 안방에 길게 모로 누워 편안하게 TV 시청을 했었다. 집이 쫄딱 망하고 나선 TV도 없어지고 그런 재미도 사라졌다. 그 즈음, 그러니까 초등학교 4학년 이후부터는 집에 들어 와서 숙제를 후다닥 해치우고 야외 활동을하다가, 해자 져서 집에 들어오고 나.. 2022. 10. 27.
(꽁트)빈대 빈대 “우리는 음지에서 살고 양지를 흡입한다” [1] 아침에 부랴부랴 나가다 보면 늘 마주치는 현관 위에 걸려 있는 가훈 액자. 오늘도 모친은 여수와 더불어 그 액자를 슬쩍 보더니 천 원짜리 한 장을 준다. 점심, 저녁, 버스, 담배 값으로. 부친이 30년 직장 생활 동안 머릿속에 주입된 원훈을 자신에게 알맞게 변조한 후에 집안 식구 모두에게 따라 하도록 만든 가훈이다. 여수 본인도 그 가훈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체질에 맞는지 부친보다 더 양지를 흡입했다. 천 원짜리 한 장은 고이 접어 나빌레라,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지만 아마도 저녁이 되어서야 비로소 꼬깃꼬깃해진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점심을 위해서 천원이 나올 필요는 없었다. 단지 학교 식당 배식기 옆의 수저통에 놓여있는 쇠 젓가락 한 세트면.. 2022. 10. 26.
도로 잘 포장된 도로는 걸어야 할 이유보다 차를 타야할 조건을 보여준다. 저어기 끝을 보면서 아, 걸어가야지 라고 느낀다면 그 놈을 끌고 가고 싶다. 그래서 난 나를 끌고 갈꺼다. 빠이~~~~ 2022. 10.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