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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률 산문집 <끌림> 중에서 "열정"

by 가제트21 2020. 1. 31.

열정이란 말에는 한 철 태양이 머물다 지나간 들판의 냄새가 있고, 이른 새벽 푸석푸석한 이마를 쓸어올리며 무언가를 끼적이는 청년의 눈빛이 스며 있고, 언제인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타고 떠날 수 있는 보너스 항공권 한 장에 들어 있는 울렁거림이 있다. 열정은 그런 것이다. 그걸 모르면 숨이 막힐 것 같은 어둠에 놓여 있는 상태가 되고, 그걸 갖지 아니하면 신발을 신지 않은 채 낯선 도시에 떨어진 그 암담함과 다르지 않다.

사랑의 열정이 그러했고 청춘의 열정이 그러했고 먼 곳을 향한 열정이 그러했듯 가지고 있는 자와 가지고 있지 않은 자가 확연히 구분되는 그런 것. 이를테면 열정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넌 자와 건너지 않은 자로 비유되고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강물에 몸을 던져 물살을 타고 먼 길을 떠난 자와 아직 채 강물에 발을 담그지 않은 자, 그 둘로 비유된다.

열정은 건너는 것이 아니라, 몸을 맡겨 흐르는 것이다.
(16-17 page "열정이라는 말"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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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만 있던 시기가 있었다.

매일 기타를 쳤고, 거의 매일 습작을 했고, 매일 그녀를 만났고, 매일 술을(이건 아닌가?) 먹었다.

어쩌면 광기라는 단어가 더 어울렸던 그런.

위에서 옮겨 쓴 것 처럼 아무 것도 재지 않고 물살에 몸을 던져 그대로 먼길을 탔던 것 같다.

 

지금.

조금씩 사라져가는 열정을 느끼지만

다시 글을 매일 쓰면서 열정을 되살리려고 애쓰는 중이다.

몸을 맡겨 흐르던 그 때를 생각하면서.

아니,

지금 이 곳, 이 시간과 함께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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