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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느끼는 것들/뮤직 노트

가을에 불러보는 노래 8-이연실 <찔레꽃>

by 가제트21 2020. 11. 20.

"깊어가는 가을 밤에......"

이 노래를 흥얼거리다보면 출출해져 온다.

가을은 식탐의 계절인가?

깊어가는 가을의 밤은 어떤 맛일까?

 

호들갑떠는 여자들의 옷차림에 하루 종일 정신줄 놓아버렸던 두 눈알을 열심히 마사지하며 봄 소풍 준비에 여념이 없던 꽃향기 아싸한 깊어가는 봄 밤의 달콤한 맛(10대).  

모닥불을 피워놓고 사라져가는 낮과 젊음을 아쉬워하면서 청춘의 노래를 주거니 받거니하며 보내는 여름 밤의  끈적끈적한 맛(20대).

눈발만 날리는 심심한 겨울밤을 못견뎌하는 친구로부터의 전화를 받고 뭐 좀 심심풀이 땅콩같은게 없을까하는 호기심에 찾아간 친구네 집의 서늘한 거실에서, 장작불 앞에 둘러 앉아 시려오는 등짝의 짜리함과 화끈거리는 가슴팍의 양면성을 인간의 두가지 얼굴로 이해하며 연설을 하는 친구의 개똥철학이 김 빠진 맥주와 더불어 졸음을 부채질하는 겨울 밤의 따끈서늘밋밋한 맛(40대 이후).

(하긴 이런 맛들도 나이들면 계절 감각이 무뎌져서 그게 그거지만..... anyway)

  

어린 시절에 맛보았던 가을 밤과 나이 들어서 느끼는 가을 밤은 많이 다를 것이다.

또한 조선 땅에서 맛보는 가을 밤과 캐나다에서 느끼는 가을 밤은 바람 소리부터 틀리니 말해 무엇하리오.

가을 밤이 나이와 장소 그리고 마음의 상태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겠지만 이민자들에게 느껴지는 맛은, 아니 느끼고 싶은 맛은 할머니의 맛이 아닐까 싶다.

할머니와 더불어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 가을 밤은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 주면서 손주에게만 주려고 몰래 가지고 오신 햇 군밤의 맛!

바로 그 맛이 가을 밤의 맛이다.

 

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그런 맛을 못 느낀 분들에게 가을 밤은 조금 쌉쌀한 맛으로 입 안에 고여 오는데, 장에 가신 엄마를 기다리던 까만 밤은 외로움과 배고픔을 잊기 위해 찔레꽃을 씹으며 별을 헤다가 꿈 나라로 갔던 아련한 찔레 꽃 향기로 기억된다.

사실 70년대 이후로는 보리고개가 그리 흔하지 않았기에 그 이후에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 찔레꽃은 배 고플 때 따먹는 꽃은 아니었으나 그 이전 세대에게 찔레꽃은 그런 의미가 아닐까?

그런 의미가 아니라도 찔레꽃에는 한국인의 아픈 과거와 함께 그리움의 정서가 배어있다.

 

고려 때 원나라에 볼모로 잡혀 갔던 큰딸 찔레가 부모와 동생을 찾아 고려로 돌아와 떠돌다가 죽어 피었다는 슬픈 전설을 가진 찔레꽃의 꽃말이 '가족에 대한 사랑'이고보면 가족 사랑 그 중에서도 엄마에 대한 어릴적 그리움이 줄줄이 스며 있는 찔레꽃이야말로 가을 밤에 생각나는 꽃이 아닐까?

<찔레꽃>이란 제목의 노래는 이연실 이외에도 장사익,은방울 자매의 노래가 있으나 이 가을 밤에 찔레꽃 전설과 맛물려 고국에 계신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깊어지면서 이연실의 노래가 듣고 싶어진다.

 

엄마에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날 하나씩 따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밤 깊어 까만데 엄마 혼자서
하얀 발목 아프게 내게 오시네
밤마다 꾸는 꿈은 하얀 엄마 꿈
산등성이 너머로 내려오시네 


가을밤 외로운 밤 벌레 우는밤
초가집 뒷산길 어두워질 때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나오면
마루 끝에 나와앉아 별만 셉니다(‘찔레꽃’;이연실 작사, 박태준 작곡)

 

이 노래 가사는 이원수의 <찔레꽃>이란 동시를 개사한 것이라고 한다.

그 시에는 누나로 표현되어 있으나 엄마로 바꾼 건 아무래도 이연실씨가 찔레꽃 전설을 알고 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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